1904년, 러일전쟁과 대한제국의 풍전등화

1904년은 대한제국에게 있어 운명의 해였습니다.
당시 동아시아는 일본과 러시아라는 두 제국주의 국가의 야심이 충돌하는 화약고와 같았고, 그 한복판에 위치한 대한제국은 거대한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해에 발발한 러일전쟁은 단순한 국제적 분쟁을 넘어, 대한제국의 주권을 뿌리째 흔들고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적인 역사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러시아는 부동항 확보를 위한 남진 정책을 끊임없이 추진하며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발판으로 대륙 침략의 야심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두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한반도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전쟁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대한제국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1904년 1월 21일, '영세 중립국'을 선언하며 평화를 위한 마지막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절박한 외침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국제사회에서 무력하게 묵살되고 말았습니다.
1904년은 단순한 한 해가 아니라, 대한제국이 주체적으로 역사를 이끌어갈 마지막 기회가 사라진 해였다.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한 작은 배와 같았다.
한일의정서와 제1차 한일협약: 국권 침탈의 서막
1904년 2월 8일, 일본의 러시아군 기습 공격으로 러일전쟁이 발발합니다.
일본군은 전쟁의 개시와 동시에 대한제국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였고, 한반도 전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보름 뒤인 2월 23일, 대한제국 외부대신서리 이지용과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 사이에 '한일의정서'가 강제로 체결됩니다. 이 조약은 겉으로는 대한제국 황실의 안전과 독립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일본군이 군사적 필요에 따라 한반도의 어느 곳이든 사용할 수 있다는 독소조항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는 대한제국의 주권이 사실상 일본에 넘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일의정서 체결 이후 일본은 대한제국의 내정 간섭을 더욱 노골화했습니다. 1904년 8월 22일에는 '제1차 한일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협약을 통해 일본은 대한제국의 재정, 외교, 군사 등 주요 부문에 일본인 고문을 파견하여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이른바 '고문 정치'의 시작이었으며, 이는 대한제국의 모든 국정이 일본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러일전쟁이라는 국제적 혼란을 틈타 일본은 단계적으로 대한제국의 주권을 무너뜨려갔습니다.
한일의정서는 겉으로 독립을 약속했지만, 그 이면에는 대한제국의 군사적, 외교적 주권을 묶어버리는 쇠사슬이었다.
민족의 저항과 꺼지지 않는 불씨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대한제국의 지식인들과 민중은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1904년 7월 18일, 영국인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과 양기탁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고 국민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신문은 일본의 검열을 교묘히 피해가며 진실을 알렸고, 수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또한, 당시 친일단체인 일진회가 '일진회 합병론'을 내세우며 국권을 일본에 넘기려 하자, 송병준과 윤시병 등 친일 인사들을 비판하며 민족의 저항을 독려했습니다.
1904년은 러일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한제국의 미래가 결정되던 시기였습니다.
외세의 압박과 내부의 친일 세력에 의해 국권이 조금씩 잠식당했지만, '대한매일신보'와 같은 언론과 깨어있는 지식인들의 노력은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어 이후 의병 운동과 독립운동의 정신적 기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를 기억하며, 위기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던 선조들의 강인한 정신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밝아지는 법이다. 대한제국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진실을 외치는 목소리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1904년 주요 사건 시간 순서
날짜 | 사건 | 설명 |
---|---|---|
1904년 1월 21일 | 대한제국 영세 중립 선언 | 러일전쟁의 위기 속에서 대한제국이 중립국임을 선언하며 평화를 호소 |
1904년 2월 8일 | 러일전쟁 발발 | 일본이 러시아 여순항의 해군 기지를 기습 공격하며 전쟁이 시작됨 |
1904년 2월 23일 | 한일의정서 강제 체결 | 일본군이 대한제국 전역을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조약이 강제로 체결됨 |
1904년 7월 18일 | 대한매일신보 창간 |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일본의 검열을 피해 진실을 보도하며 민족의식을 고취 |
1904년 8월 22일 | 제1차 한일협약 체결 | 일본인 고문이 대한제국 정부의 각 부서에 파견되어 실권을 장악하는 '고문 정치'가 시작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