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대한제국 선포: 자주 독립을 향한 고통스러운 첫걸음
19세기 말의 조선은 열강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간섭이 심해지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1896년)을 단행하며 위기를 모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다른 외세에 기대는 임시방편일 뿐이었죠.
혼란과 무기력함 속에서 백성들의 자주독립 열망은 더욱 커져갔고, 고종 황제는 이러한 민심의 요구에 부응해 다시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897년은 조선이라는 이름 대신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해로 기록됩니다.
대한제국의 선포는 단순한 국호 변경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500년 넘게 중국의 제후국으로 존재했던 조선이 국제사회에서 **자주 독립 국가**임을 천명하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나라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한 상황을 이용해, 고종은 황제국을 선포함으로써 나라의 격을 높이고 주권을 공고히 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주변 강대국들과 동등한 지위를 확보하려는 절박한 몸부림이자, 무너진 국권을 회복하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대한제국 선포의 과정과 숨은 의지
1897년 2월, 고종은 아관파천 1년 만에 러시아 공사관을 떠나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환궁했습니다.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을 벗어나 독립적인 행보를 보이기 위함이었죠. 환궁 후 고종은 황제국 선포를 위한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상징적 행위는 바로 '원구단' 건설이었습니다. 원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오직 중국의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었습니다. 원구단을 건설함으로써 고종은 조선이 더 이상 청나라의 속국이 아닌, 독자적인 하늘의 아들(천자)을 가진 황제국임을 선언하고자 했습니다.
"독립은 남에게 의지하여 얻는 것이 아니다. 오직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光武)'로 선포했습니다. 이로써 조선은 자주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황제 중심의 강력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 시기 고종이 내세운 개혁 정책을 우리는 **광무개혁**이라 부릅니다.
광무개혁: 실용과 부국강병을 향한 노력
광무개혁은 이전의 개혁과는 다른 특징을 보였습니다. '구본신참(舊本新參)', 즉 '옛것을 근본으로 삼고 새로운 것을 참고한다'는 원칙 아래 전개된 개혁이었죠. 이는 무분별한 서양 문물의 도입보다는 조선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서구의 기술과 제도를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었습니다.
주요 개혁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황제권을 강화하여 국가의 중심을 잡고자 했습니다. '대한국국제'를 제정하여 전제군주국임을 명시하고, 황제가 군 통수권을 비롯한 모든 권력을 갖도록 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원수부를 설치하고 신식 군대를 양성하여 군사력 강화를 꾀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근대적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양전 사업을 실시하여 토지 소유를 조사하고, 근대적 토지 소유 증명서인 **지계(地契)**를 발급했습니다. 또한 근대적 상공업 진흥을 위해 여러 회사를 설립하고 전차, 철도, 전화 등을 도입했습니다. 한성전기회사와 같은 근대 기업이 등장한 것도 이때입니다.
“광무개혁은 자주독립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 정신은 훗날 독립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은 외부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열강의 끊임없는 이권 침탈과 일본의 야욕은 대한제국의 운명을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광무개혁이 황제권 강화에만 치중했다는 한계도 있었고, 개혁의 성과를 온전히 거두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 시기 자주 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이들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897년 전후 주요 역사 사건 도표
날짜 | 사건 | 설명 |
---|---|---|
1895년 10월 | 을미사변 |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에 침입해 명성황후를 시해 |
1896년 2월 | 아관파천 |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김 |
1896년 7월 | 독립협회 창립 | 서재필 등을 중심으로 자주독립과 근대화 운동 전개 |
1897년 2월 | 고종 환궁 |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돌아옴 |
1897년 10월 | 대한제국 선포 | 고종이 원구단에서 황제에 즉위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꿈 |
1897년 ~ 1904년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정부가 추진한 부국강병을 위한 근대화 개혁 |
1899년 8월 | 대한국국제 반포 | 황제 중심의 전제군주국임을 명시하는 헌법 제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