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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종 즉위와 흥선대원군의 등장
1864년, 조선은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해는 철종의 사망과 함께 어린 고종이 왕위에 오르며, 그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게 된 해입니다.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의 폐해로 인해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서양 열강의 압박이 거세지는 등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며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안동 김 씨의 세도정치가 있었습니다. 순조, 헌종, 철종에 이르는 3대에 걸쳐 권력을 독점했던 이들은 왕권을 약화시키고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렸습니다. 흥선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철저히 자신을 숨기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왕실 최고 어른인 조대비와 손을 잡고 자신의 둘째 아들 이명복(훗날의 고종)을 왕위에 올리는 데 성공합니다
2. 절체절명의 위기를 개혁으로 돌파하다
집권 후 흥선대원군은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고, 무너진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과감한 개혁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세도정치의 근간이었던 안동 김 씨 세력을 축출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한 것입니다. 이는 오랜 기간 특정 가문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권력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삼정(전정, 군정, 환곡)을 개혁했습니다. 특히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호포제'를 실시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고 재정을 확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개혁은 양반들의 거센 반발을 샀지만, 대원군은 "백성을 해치는 자는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내가 용서치 않는다"라고 말하며 강력하게 밀어붙였습니다.
"백성을 해치는 자는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내가 용서치 않는다."
흥선대원군은 또한 왕실의 위엄을 되찾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타 사라진 경복궁을 중건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과 강제 노역을 부과하여 재정난과 민심 이반을 초래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경복궁 중건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를 넘어, 약화된 왕권과 국가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회복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서원을 대폭 정리하며 지방 양반의 세력 기반을 약화시키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는 효과도 거두었습니다.
3. 쇄국정책의 그림자, 외세와의 충돌
대외적으로는 서양 열강의 침략에 맞서 통상 수교를 거부하는 쇄국정책을 펼쳤습니다.
천주교를 탄압하는 '병인박해'를 단행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침략한 '병인양요'를 겪기도 했습니다.
이후 미국 함대가 침략한 '신미양요'까지, 대원군은 강경한 쇄국정책을 고수하며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웠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자주적인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문호를 굳게 닫아 근대화의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화의를 하자는 것이고, 화의를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1864년은 조선의 26대 왕 고종이 즉위하고, 그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섭정으로서 권력을 잡았던 역사적인 해입니다. 이 해를 기점으로 조선은 10여 년간 흥선대원군의 강력한 통치 아래 개혁과 쇄국이라는 양면적 정책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조선의 후기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훗날 개항과 근대화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과 혼란을 낳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당시 대원군은 안팎으로 흔들리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그의 정책은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막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4. 1864년 전후 역사적 사건 도표
연도 | 주요 사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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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 철종 사망, 고종 즉위 | 철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고,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이명복(고종)이 즉위함. |
1864년 | 흥선대원군 집권 | 어린 고종을 대신해 그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시작함. |
1866년 | 병인박해, 병인양요 |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가 일어난 후, 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함. |
1871년 | 신미양요 | 미국 함대가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강화도를 침략함. |
1873년 | 최익현 상소, 대원군 하야 | 최익현 등의 상소로 대원군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고종의 친정이 시작됨. |